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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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본관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 온 고려대학교
■ 고려대학교 역사
고려대학교(高麗大學校)는 지난 1905년 대한제국의 재정 총괄 내장원경(內藏院卿) 충숙공(忠肅公) 이용익(李容翊, 1854~1907) 선생이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이념으로 고종(高宗) 황제의 하사금을 받아 설립한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보성전문학교는 곧이어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과 이용익 선생의 망명으로 운영난을 겪으며 천도교 지도자였던 의암(義菴) 손병희(孫秉熙, 1861~1922) 선생이 경영권을 이어받았으나 일제의 탄압과 세계 대공황 등의 여파로 재정난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 1891-1955) 선생이 일제 식민지 관학과 맞설 수 있는 민립대학 설립의 원대한 꿈을 품고 학교를 인수하여 고려대학교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특히 인촌 선생의 혼이 담긴 본관(사적 제285호)과 겨레의 정성을 모아 건립한 중앙도서관(사적 제286호)은 대학 성장의 든든한 토대가 되었다. 해방 후인 1946년 종합대학교로 승격된 고려대학교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저항정신의 표상으로 민족의 양심이자 비판적 지성의 역할을 해나갔으며 이는 1960년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4.18 고대학생 의거를 비롯한 숱한 민주화 항쟁으로 분출되기도 하였다.
한편 학교법인은 1971년 우석학원 합병으로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확보하였고, 1980년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서창리(現세종특별자치시)에 세종캠퍼스를 건립함으로써 도약의 행보를 이어나갔다. 또한 1990년대에는 녹지캠퍼스를 개발하고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을 혜화동에서 안암동으로 이전하였으며 국내 최초로 산업체와 대학 및 연구소간의 합동 연구를 실현한 한국산학연종합연 구원(Korea Technocomplex)을 설립했다. 아울러 생명공학분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생명공학원을 개원하고 첨단 연구장비 를 갖춘 기초과학지원센터를 유치하였으며, 국제문제를 연구하고 국제지역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한 국책대학원으로 국제대학원을 설립하여 21세기 과학고대, 세계고대를 지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더불어 대운동장 부지에 지하주차장과 열람실 및 각종 편의시설, 잔디공원이 조성된 중앙광장을 준공함으로써 국내 대학 최초로 지상에 자동차가 없는 쾌적한 캠퍼스를 구현하였다.
고려대학교는 2005년 개교 100주년을 전후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났다. 1990년대 중후반 국제화 준비기를 거치며 다진 인프라를 디딤돌로 삼아 영어강의를 대폭 확대하였으며, 외국인 교원을 충원하였다. 아울러 2004년 세계대학의 다자간 협력체인 U21(Universitas 21) 회원교가 되었고, 2005년에는 세계대학 총장 포럼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환태평양 대학교류협의회(APRU, Association of Pacific Rim Universities)에 가입하였으며, 현재까지 90여 개 국가, 850여 개 대학 및 기관과 학술교류협정을 맺었다. 고려대학교는 현재 국제화 전진기지로서 중국인민대학(중국인민대학), 캐나다 UBC(The 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등 세계적인 명문대학 내에 학생 기숙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안암 캠퍼스에는 외국인 교수 및 학생 전용 기숙사인 CJ International House, Anam Global House를 갖추고 있다. 고려대학교는 명실공히 민족의 대학으로서 그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하면서도 세계적인 연구중심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제적 인지도와 실력을 갖추어나가고 있다.